나의 이야기

바른 말, 고운 말

달빛 아래 파도 2012. 6. 16. 15:09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무용품의 하나인 '호치키스'는 이제 무슨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이 말은 미국인 발명가 이름을 따서 지은

상표 이름으로, 원래 말은 '호치키스 페이퍼 파스너'(Hotchkiss Paper Fastener)

랍니다. 보통 '스테이플러'라 하는데요. 이를 직역하면 '꺾쇠(거멀못)로 매는

것'이라는 뜻이죠. 알다시피 이 물건은 꺾쇠 모양의 단단한 철사못을 여러

장의 종이에 눌러 박아 한 덩어리 묶음으로 만드는 간단한 연장입니다.

 

몇 해 전, 국어심의회에서는 '(종이) 찍개'라는 말로 다듬었는데, 아직까지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찍개도 좋지만 박음쇠도 괜찮을 듯합니다.

이처럼 밖에서 들어온 상품의 회사나 발명가의 이름을 제품 이름으로 쓰는

사례가 우리 주변에는 상당히 많은데, 이를 고쳐서 제대로 써야 할 것입니다.

 

'클랙슨'(Klaxon)은 경음기로, '바리캉'(프, Bariquant)은 이발기로, '포클레인'

(Poclain)은 삽차 또는 굴착기로 고쳐 쓰면 좋겠죠. 포클레인은 삽차(굴착기)

만드는 회사 이름입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가축을

포클레인이 땅에 묻고 있습니다" 이런 보도를 종종 하는데요. 예를 들어 현대

에서 자동차 만드는데 길거리에 운행 중인 차를 보고 "자동차 지나간다"

하지 않고 "현대 지나간다" 하면 잘못된 말이지요.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고

있다'는 것은 자동차를 보고 '현대 지나 간다'와 다름없는 엉뚱한 표현입니다.

"삽차(굴착기)로 땅을 파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해야 옳죠. 이처럼 신문이나

방송에서 쓰는 용어는 일반 국민은 물론 어린이들의 언어 습관에 큰 영향을

끼치므로 될 수 있으면 순화된 우리말을 쓰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컴퓨터, 텔레비전처럼 정체가 확연히 드러나는 말이 있는가 하면 노다지,

깡통처럼 뜻이 불분명한 외래어도 많습니다. 노다지의 사전적 의미는 ‘캐내려

하는 광물이 많이 묻혀 있는 광맥’입니다. 그런데 어원은 'No Touch'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광산의 이권을 갖고 있던 서양인들이 걸핏하면 한국인 인부들

에게 물건에 손대지 말라 호통 쳤는데, 이를 한국인 인부들이 금을 가리키는

걸로 잘못 알아들어 생긴 말이라는군요. 깡통 역시 영어의 ‘Can’과 우리말

‘통’이 합쳐져 생긴 외래어 입니다.

 

어떤 한 가지 일에 열중하는 사람을 뜻하는 '마니아'(Mania)를 매니어라고 하는

것도 잘못된 표현이며, 손이 닿기만 하면 모두 금으로 변한다는 그리스 신화

주인공 이름이 '미다스'(Midas)인데 영어식 표기로 마이더스라 하는 경우, 같은

맥락에서 꼬리가 두 개 달린 인어 '시렌'(Siren)을 사이렌이라 하며,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그리스 조각상으로 릴케가 첫 눈에 반했다는 '승리의 여신'

'니케'(Nike) 또한 나이키라는 운동화 상표가 되어 불티 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원래는 고유명사인 마니아, 미다스, 시렌, 니케... 이렇게 불러야 옳지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인명과 지명은 현지발음(고유명사)을 존중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북경을 베이징, 중국 국가주석은 호금도(胡錦濤)가 아닌

후진타오, 동경을 도쿄, 일본 수상을 관직인(菅直人)이라 하지 않고 간 나오토라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영어로는 파리(Paris)를 패리스, 로마(Roma)를 Rome로 표기하여 롬,

모스크바(Moskva)를 모스카우,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을 비엔나, 물의 도시

베네치아(Venezia)를 베니스, 도나우(Donau) 강을 다뉴브 강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도나우 강이 지나가는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에서

몇 나라 말로 부르기는 하지만 독일어 '도나우'가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있다는데

영어로만 다뉴브라 하는 것이지요. 이는 인명, 지명에 대한 국제표기원칙을

무시한 것으로서 제 개인적 판단으로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영향을 받아 베니스, 비엔나, 다뉴브 등으로 쓰는 경우가 많지요)

 

우리가 잘못 쓰는 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두 가지 있는데요. 하나는 독일 차

BMW를 '비엠더불유'라 하는 것입니다. '베엠베'라 불러야 옳지요. 원래 이름이

베엠베 이니까요. 학교에서 독일어 배울 때 ABCD를 '아베세데..' 하지 않았나요?

독일어에서 B는 베, W는 우리 말 '비읍' 발음이 납니다. 작곡가 바그너(Wagner)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철자를 보면 알 수 있지요.

영어식 비엠더불유는 틀린 말이고, 베엠베가 고유명이며 유럽 각국에서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같은 독일 차인 *폴크스바겐(Volkswagen)과

벤츠, 아우디처럼...

 

다른 하나는 미국 화폐 단위인 달러(Dollar)를 불(弗)이라 하는 것입니다. 100불,

200불, 수출 100억불 달성... 이런 건데요.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과거 일본에서

弗자가 달러 표기 단위인 $와 비슷하게 생겨 달러를 불(일본에서는 달러를 도루

ドル라 함)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미국 달러를 부르거나 표기

할 때 불(弗)자를 쓰면 이것 역시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유로(Euro)에

편입됐지만 과거 프랑스는 프랑, 독일은 마르크, 영국은 파운드. 이렇게 썼으며

러시아는 루블, 노르웨이·스웨덴은 크로네, 일본은 엔, 중국은 위안, 한국은 원

입니다. 모든 나라 화폐 단위를 그 나라 말로 호칭하면서 유독 달러만 불(弗)

이라는 정체불명의 한자로 쓰는 것은 고쳐져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물건이든 국내로 들어올 때는 그 이름도 함께 들어오기 마련인데요.

이런 말들이 널리 퍼지기 전에 다듬은 말을 미리 제시해 준다면 국적불명의

외국어나 불필요한 외래어도 어느 정도 가려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별 뜻 없이 쓰는 와이프는 아내로, 십팔번(十八番)은 애창곡으로,

스케쥴은 약속으로, 메뉴는 차림표로, 핸드폰은 휴대전화로, 사이즈는 크기로,

디자인은 모양, 또는 모양새로, 박스는 상자로, 그린 에너지는 친환경 자원으로,

모밀국수는 메밀국수로, 모델하우스는 견본주택이나 둘러보는 집 등 많은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꾸면 좋을텐데, 그게 어려울까요.

 

국어정책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 없이 이대로 간다면 100년 후, 한글 대부분을

영어가 점령하여 우리말이 심각한 손상을 입고 존폐 기로에 설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100년 뒤, 우리 후손들이 2012년 6월 15일치 신문을 읽지 못하거나,

기사 내용이 무슨 뜻인지 알아 들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계속 영어식·

일어식 표현을 고집 하겠습니까?

 

 

# 제가 평소 연구(?) 한 것과 갖고 있던 자료를 바탕으로 썼는데요.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를 있습니다. 혹시 잘못된 부분이 보일 때는 너그럽게 이해하시고 고쳐

주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독일 차 가운데 폭스바겐을 *폴크스바겐이라 하여 궁금해

하실 수 있는데, 보통 폭스바겐이라 부르지만 독일어로 폴크스바겐이며 외래어 표기법

에도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관점에 따라 영어 또는 외국어를 배척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요.

그렇지 않다는 말씀 드립니다. 다만 영어는 꼭 필요한 사람(우리나라는 대학 수능과

입사 시험 때문에 대다수가 영어 공부를 해야 하지만)이 하면 되고 일반 국민은

영어 몰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와이프,

스케쥴, 헤어스타일... 이런 용어 쓴다 하여 그 나라 영어 실력이 향상되는 것 아니거든요.

 

이야기가 너무 길어서 미안하고요. 다음에는 짧게 쓰겠습니다. ㅎㅎ

이 글은 최용기(국어연구원 학예연구관) 선생이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것과 경향신문

임지영 기자의 신문 기사를 인용,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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