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무치(角者無齒)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뿔이 있는 짐승은 이가 없다'는 뜻으로,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재주나 복을
다 가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고려시대 문인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에
나오는 말인데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적절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 각자무치에 관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명화 <최후의 만찬>으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6세기에 잠수함,
비행기, 로봇 같은 최첨단 발명품에 대한 욕망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비행기의 구조와 원리에 대하여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의학
지식 또한 수준급으로 당시 그가 그린 인체해부도는 지금 것과 거의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는 여러 분야에 걸쳐 시대를 앞선 생각을 갖고 부단히 연구하여
로봇 같은 경우 거의 발명 단계에 이르렀다는군요.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다 빈치가 나눗셈을 할 줄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알다시피 다 빈치는 인류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특출한 천재였습니다. 그림만 잘 그린게 아니라
과학 지식과 탐구력이 놀랄 만큼 뛰어 났습니다. 다 빈치의 이론을 현대 과학으로
풀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이 나눗셈을 할 줄 몰랐다면
믿겠습니까?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를 쓴 수필가로 서른 한 살에 요절한
전혜린은 여자를 강단에 세우지 않던 서울대 법대의 완고한 전통을 깨고 스물
다섯 나이에 최초로 서울대 강단에 서고,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 독일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전 세계에서 한 해에 한 사람 나오기 어렵다는 천재로 평가받았던
전혜린은 그러나 서울대 입학시험에서 수학은 0점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학 점수를 빼고도 전체 성적이 2등이었기에 간신히 구제 받을 수 있었다는군요.
전혜린은 한국이 배출한 '천재소녀'였습니다. 우리나라 여성사의 신새벽을 열어
젖힌 선구자적 인물이죠. 남존여비의 고루한 인습이 남아 있던 시대, 그녀는
당당히 실력으로 서울대 법대 강단에 서고 독일 유학을 다녀온 총명한 여성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천하의 전혜린이 수학에서 0점을 받았다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도 모자란 부분과 약한 고리가 있습니다.
어쩌면 신은 공평한지 모릅니다. 출중한 능력을 갖고 태어나 천재성을 발휘하며
성공한 사람에게 사소한 결함마져 없다면, 그는 교만에 빠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러 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자신도 불행해지고 훌륭한
자질을 사회 발전에 쓸 수 없게 되지요. 결국 개인적·국가적으로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삼신 할미가 요령을 부려 아기의 충만한 기(氣)를 약간 눌러 준다는군요.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천재에게 액운이 끼고 명이 짧아진다는 속설이
있답니다. 지혜로운 삼신 할미가 작은 업(業)으로 액운을 피하게 하지 않는다면
아까운 인물이 제 명에 살지 못한다니 신기하지 않습니까. 주변에서 재능 많은
사람이 일찍 세상 뜨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그것은 삼신 할미께 치성을 드리지
않아 염라대왕의 노여움을 받은 것이겠지요.
앞서 말했듯, 인간은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 태어납니다.
학벌, 재산, 지위, 건강, 외모, 배우자, 자식... 아무리 완벽한 사람도 어느 한 구석은
비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신의 섭리며 사람이 가야 할 길입니다. 힘 세고, 재빠르며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사자나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준다면 세상 모든 짐승들은
살아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나 이름 있는 명문대학을 졸업한 다음 고시에 합격하거나 우리나라
최고 기업에 들어간 젊은이가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 젊은이가 영화배우처럼 잘
생기고, 씨름선수처럼 튼튼하며, 재벌회장처럼 돈이 많다면 과연 그 사람이 겸손한
자세로 주위 둘러보고, 어려움에 처한 약자를 위해 따뜻한 마음으로 봉사할까요?
그러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이런 사람에게는 시련 하나 쯤 겪게
한다지요. 너무 풀어주면 안하무인, 천방지축, 사고치니까...
각자무치와 과유불급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우리는 자신의 능력이 조금 부족하거나
현재 어렵다 해도 좌절해선 안됩니다. 어차피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으니까요.
부와 권력을 거머진 사람도 어딘가 흠결이 있어 그런 부분을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
하고 전진하는 것이 인간 역사의 과정입니다.
우리는 오늘 괴로워도 내일의 밝은 태양을 기다리는 끈기를 길러야 합니다. 각자무치
라는 말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독점해선 안 된다는 하늘의 뜻이며 자연의 섭리인
까닭에, 나에게도 반드시 기회가 주어진다는 믿음 갖고 앞을 보며 천천히 나아가면
언젠가 크게 쓰일 때가 있는 법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나눗셈 못하고, 전혜린이 수학에서 0점 받은 역설 가슴
깊이 새기며 정직하게 내딛는 당신의 걸음 걸음에 축복 가득하길 빌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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