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빠져나간 차는 김포 들녘 지나 강화섬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방향을 틀어 30여분 달리니 외포리라는 포구에
다달았어요.
석모도 가는 뱃길은 언제나 만원이었습니다.
10분 남짓 걸리는 항해는 젊은이들이 새우깡으로
갈매기와 친구하는 재미난 시간이 되었지요.
석포리에서 차 몰고 보문사 가는데
벌판에 폐염전 잔해(?)가 여기저기 흩어져 풍성했던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듯 합니다.
탄광. 숯막과 함께 가장 힘들다는 염전일, 하지만
그런 노동의 결실로 만들어진 천일염이 식탁에 올라
음식의 맛을 지배하고 있지요.
우리나라에서 소금이 가장 많이 나는 곳은 전남 신안군입니다.
전국 생산량의 약 70퍼센트가 그곳 바닷가에서 만들어 진다는군요.
석모리에는 보문사라는 사찰이있는데 절 뒤켠에 있는
계단 따라 조금 오르면 유명한 '눈썹바위'가 나타납니다.
바위가 마치 사람의 눈썹처럼 생겼는데 불자들은 그곳에서
부처님께 공양드리며 예를 바치더군요.
그 바위가 제 눈에는 오버행(하늘벽. 툭 튀어 나온 암벽의 돌출부위)처럼
보였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민머루 해변 따라 쭉 걷다 보면 조그만 선착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서해 낙조는 슬프도록 아름다웠습니다.
갯내음 물씬 풍긴 바닷가에서 서편 하늘 물들인
노을 보고 있노라니 자연의 오묘한 조화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강화도는 역사적으로 사건이 많았던 고장입니다.
외침을 받아 왕이 피난 가기도 했고 서세동점하던
제국주의 열강들이 함포 앞세우고 고요한 아침의 나라
침탈할 때 최전방에서 적들과 맞서야 했던 곳이지요.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4)가 그것인데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 함선이 강화도에 침입하여 국보급 문화재인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 갔으며, 특히 신미양요 때는 미군의 중무장한
아시아 함대가 막강한 화력으로 조선군 진지를 초토화하여
어재연 장군이 결사 항전한 조선군 수비대를 거의 전멸시켰습니다.
지금도 관광객이 많이 찾는 광성보의 용두돈대(진지)에서
"아, 경치좋다!" 하기 전에 적탄에 쓰러져간 우리 병사들
기억하는 것도 여행을 알차게 하는 방법 아닐까요?
언제 틈 나거든 강화도 구경가세요.
그 지방 특산물인 강화 인삼과 순무, 그리고 막 잡아 올린
밴댕이회 맛이 그만입니다.
횟집에 들어가면 수더분한 아줌마가
"어서 오시겨!"하며 반갑게 맞고
나올 땐
"또 오시겨!"하며 그윽한 눈빛으로 배웅합니다.
석모도 가는 것이 번거롭다면
장화리, 장경리에서 석양 감상하는 것도 좋습니다.
눈동자 속에 들어 온 금빛 노을이 오래도록 당신 기억에 남아
해변을 그리워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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