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 죽마고우 만났습니다.
남녘 사는 친구들이 고향 소식 한 보따리 들고 서울 나들이 했습니다.
전엔 주로 목포에서 만나고, 부산이나 광주, 서울 등을 돌았는데
아무래도 서울 사는 사람이 많은 까닭에 시골 친구들이 움직이기로 했나봅니다.
여자 넷, 남자 다섯...
원래 오기로 한 친구가 더 있었는데
한 사람은 처가에 초상 생겨 못 오고,
다른 친구들은 연락이 되지 않거나 급한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시골 친구들은 보따리 풀더니 우선 먹을 것부터 꺼냅니다.
국내산 홍어, 말린 민어, 삿갓조개, 거북손, 모자반, 톳 등...
특히 삿갓조개에 된장을 살짝 풀어 끓인 조개탕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삿갓조개는 고향 바닷가 조간대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패류인데
겉모양이 삿갓처럼 생겨 그렇게 부른답니다.
정약전 선생은 <자산어보>에서 삿갓조개를 '비말'이라 적었는데요.
이유는 그곳 사람들이 삿갓조개를 '배말'이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어류도감이 없던 시절이니 뛰어난 인문학 소양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물고기와 해양생물 이름은 생소했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우럭 또한 '금척어'라 기록하는데 현지인들이 '금처구'라 부르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지요.
얼마 만에 받아 본 고향 밥상입니까.
서울에서 몇 십년 살아 입맛이 변할 만도 한데 홍어와 민어, 삿갓조개를 본 우린
식탐이 동하여 뱃구레가 쑥 나오도록 먹어댔습니다. 도시 사람 먹이려고 일부러
바다에 나가 갯것 따온 친구가 흐뭇한 표정으로 우릴 바라봅니다.
평생 바다 일구며 살아온 그 친구는 해풍에 그을린 까만 얼굴로 행복한 미소지읍니다.
나는 해녀 밥상 앞에 앉아 진기한 맛도 즐겼지만 거기서 풍기는 머나먼 남해 바다
푸른물결 넘실대는 고향의 시린 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때 쯤, 고향에는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워 있을 것입니다.
하얀 눈 속에 피어 난 붉은 동백의 농념한 자태는 너무 아름다워 보는 이를 단번에
매료시키고 마는데 소시적 동백나무에 올라 붉은 꽃송이 따 속에 들어 있는 꿀물
빨아 먹던 시절이 아련히 생각납니다.
친구들 가운데 여자 동창 둘이서 할머니가 돼 있더군요.
낼 모래가 육십이니 당연한 것이지만 한편으론 쓸쓸한 나이였습니다.
그래 많이 살았구나. 앞으로 오래도록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친구야!
옛 이야기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밖을 내다보니 희멀건 새벽이 다가옵니다.
이 밤 지나면 떠날 친구들인데 밤은 이토록 짧기만 할까요.
친구들이 피곤한지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듭니다. 마땅히 누울 곳도 없고
피로가 물밀 듯 몰려오고...
난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습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얼굴을 스칩니다.
택시 탔습니다.
집에 돌아와 소파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일어나니 해가 중천에 떠 있습니다.
친구들에게 문자로 인사 대신합니다.
친구들,
인사도 없이 떠나 미안해.
짧은 시간이었지만 반가웠고
무엇보다 고향 음식 먹으며 정겨운 옛 이야기
나눌 수 있어 기쁘기 그지 없었네.
부익, 근성, 숙란, 순예, 금숙 친구 잘 내려가고
서울 친구들도 편히 쉬도록 해.
내년을 기약하며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길 빌게~~
모든 이별엔 고통 따릅니다.
고통 없는 이별이 없는 까닭이지요.
만해 한용운 선생은 이별의 고통을 갈파하고 백담사 단풍나무 숲 거닐며 이렇게
노래 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이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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