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억새밭 추억~

달빛 아래 파도 2013. 11. 4. 09:22

 

 

온 산하 붉게 물들인 단풍 보느라
두 눈이 빨갛게 되었는데
하얀 억새밭 걸으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눈망울이 맑아져 산길 걷는데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하산 길이지만 고산준령 넘었으니
족히 서너 시간은 걸었나 보다.

갈증이 난다.
수통 입에 물으나 물 한 방울 없다.
다리 후들거리고 피로 몰려온다.
험한 산 넘어지고 엎어지며 오를 때는
정상 바라는 꿈이 있지만 막상 꼭대기에서
이런저런 상념에 젖다 하산할 땐 기운 빠지고 만다.

큰 산은 내려 오는 길이 지루할 때가 많다.
산 크고 골 깊다 보니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것이다.
이 자락 지나면 마을이려나아니네.

평지에 와서도 그렇게 몇 자락을 넘어야 마을에 도달할 수 있다.
갈증은 점점 심해져 물 한 모금이 간절하다.

혼자하는 산행은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불편할 때가 있다.
얼마나 걸었을까. 길 모퉁이에 조그만 암자가 보인다.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가 샘을 찾는데 거기에 스님
한 분이 물 긷고 있다.
승려에게 다가가 말 건넨다.

: 스님! 

:

저어 스님!
: … …

: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겠습니까?
: … …

: 송구하지만 물 좀 마실 수 있을런지요.
: … …

: 그럼 제가 떠 먹겠습니다.
: … … …

 

조롱박에 철철 넘친 물 다 마시도록눈길 피하고 있던 스님이 그제야 이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는데 소녀 티가 채 가시지 않은 앳된
비구승이다.

: 아~ 물 맛 좋다. 잘 마셨습니다.
: 어디서 오시는 길이신지

: 계천처에서 내려 왔습니다.
: 그리 목이 타도록 어찌 참았는지

: 수통에 물이 떨어져 갈증이 심했습니다.
: 이제 목 축였으니 가시오서.
: 스님

: 소승은 문도門徒 아니면 말 섞기 어려운지라 이만… …

: 이런 말씀 드려도 되는지 모르지만 자태가 참 곱습니다.

: 어머 어머, 나무관세음보살… …

 

곱다는 말에 저리 놀라다니.
볼이 빨개진 여승은 함지에 담긴 물이 출렁거려
적삼 젖는 줄도 모른채 종종 걸음으로 사라지고
산 사나이는 빈 가슴 다시 일으켜 터벅터벅
산 길 내려온다.

친구님들, 올 가을엔 단풍 구경만 하지 말고
억새밭 한 번 가 보세요.
우리나라 최고 억새밭은 경남 밀양에 있는
사자평獅子坪 -영남알프스-인데요. 그곳에 가면 평생 잊지 못할

추억 가득 담아 올 것입니다.

 

# 이 글은 제 산행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으며 글 형식은 고은 선생의

<절을 찾아서>라는 책 내용을 참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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