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가서

달빛 아래 파도 2012. 4. 25. 19:07

 

 

주일날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갔다가

미사 끝나고 신부님한테 인사를 하니

신부님이 먼저 알고, 예까지 젓 사러 왔냐고

우리 성당 자매님들 젓 좀 팔아주라고

우리가 기뻐 대답하기를, 그러마고

어느 자매님 젓이 제일 맛있냐고

신부님이 뒤통수 긁으며

글쎄 내가 자매님들 젓을 다 먹어 봤겠느냐고

우리가 공연히 얼굴 붉히며

그도 그렇겠노라고

 

정희성 시인의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가서'라는 시입니다.

내용을 보니 신부님 입장 난처하게 됐네요.

그도 그럴 것이 사제가 어찌 자매님 젓을 먹어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세히 살펴 보면 '젓'은 먹을 수 있습니다.

'젖'을 먹으면 큰 일 나지만...

 

이렇게 젓과 젖처럼 발음에서 오는 의미 전달의 차이를

말음법칙(末音法則)이라 하는데요.

낮, 낯, 낫, 났이 낟으로, 부엌이 부억으로 소리 나는 것이라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신부님은 젓 문제로 곤란 겪었지만 지금이 젓갈 철이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젓갈 시장은 광천이고, 그 다음이

곰소, 강경 이런 곳인데요. (새우를) 5월에 잡은 것이 오젓,

6월에 잡은 것이 육젓, 가을에 잡은 것이 추젓, 한겨울에

나온 것이 동백하... 그렇다네요.

 

과거 아랫녘 사람들은 새우젓 쓰지 않고 온통 멸치젓을

사용했습니다. 지금은 그곳 입맛도 변했나 모르지만

김장 담글 때나 고구마순 무칠 때 멸치젓을 주로 썼지요.

 

어부들이 바다에서 멸치 잡아 오면 중간 크기는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채반에 담아 해풍에 말려 목포 건어물 상회에

내다 팔고, 큰 놈은 지하 저장고에 쓸어 넣은 뒤 소금 듬뿍 뿌려

숙성시킨 다음 젓갈과 액젓 만들었습니다.

 

맛이 참 좋았어요. 밥도둑이 따로 없었는데 짠맛을 조금만

줄였다면 세계적인 상품이 되지 않았을까요?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사람들은 까나리액젓을 쓰더군요.

처음엔 생소했는데 자꾸 먹다 보니 익숙해 졌습니다.

 

주부님들, 벚꽃 흐드러진 봄이 왔습니다. 다음 달에 광천, 곰소

등지에서 젓갈 시장을 연다는 군요. 커다란 함지에 수북히

쌓여 있는 멸치젓, 황석어젓, 밴댕이젓, 어리굴젓, 꼴뚜기젓,

낙지젓, 갈치속젓, 멍게젓, 창란젓, 새우젓, 명란젓, 오징어젓...

맘껏 고르세요.

 

다만 광천 시장통에서 신부님 만나거든 어느 자매님 젓이

가장 맛있냐고 묻지 마세요. 신부님 얼굴 빨개지면

미사 드리는데 지장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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