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좀 할까요?
영국 역사 말입니다.
사실 역사라고 하면 딱딱하고 지루한 느낌이 들죠.
또 아주 오래된 얘기라서 흥미 유발하기도 힘들고요.
그런데 오늘 주제는 그런대로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니까
알아두면 좋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 스스로를 '간서치'라 칭하며 독서에 빠져 지낼 때
앙드레 모루아의 〈영국사〉, 〈미국사〉와
알베르 마띠에의 <프랑스 혁명사> 등 역사 책 읽게 되었는데요.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영국사 전체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그러니까 잉글랜드의 헨리8세와 앤 불린에 대하여 말하려고
합니다.
〈1000일의 앤(Anne Of The Thousand Days)〉이라는 영화
보셨는지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아름답고 비극적인 이야기로 여인들 눈물깨나
쏟게 한 문제작이며 화면에 역사와 풍경을 잘 담아낸 수작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앤 불린에 대하여 살펴볼까요?
앤 불린(Anne Boleyn)은 1533년 1월 25일 잉글랜드 국왕 헨리8세와
결혼하고 1536년 5월 19일 왕이며 남편인 사람에게 참수당한 비극적인
여인으로, 그녀가 왕비에서 갑자기 사형수로 신분 강등 되어 처형되기까지
천 일간(정확히는 3년 3개월 6일, 1100일)의 이야기입니다.
잉글랜드 국왕 헨리8세는 형이 죽자 왕위에 오른 인물로 형수인 스페인
공주 캐서린 왕비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그런데 여덟살 연상인 캐서린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둘 사이에 불화가 생기고 말죠(후세 사가들에 의하면
헨리8세가 앤 불린과 사귀려고 붙인 구실이었다 합니다)
앤 불린은 원래, 프랑스로 시집간 헨리8세 누이 메리 튜더의 시녀였는데요.
당시 문화적으로 수준 높았던 프랑스 궁정에서 수업받았고, 세련된 기품과
화술 그리고 총명하고 활달한 성격에 음악과 춤까지 능숙하여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답니다.
그런 앤 불린이 천하의 호색한 헨리8세 눈에 들어옵니다. 앤은 가녀린
몸매와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를 지녀 금발에 흰 피부를 선호하던 당시
궁중에서 미인으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가 오히려 이국적인 매력을 풍겨 바람둥이 왕이 홀딱 반하고 맙니다.
어느 날 앤은 연인과 무도회 춤추러 왔다 헨리8세 눈에 띄는데
탐욕스런 왕은 결혼을 약속한 두 사람을 강제로 떼어 놓은 뒤 앤 불린에게
구애공세를 펴기 시작합니다. 시와 음악, 문학, 예술 등 수준 높은 지적 소양을
갖춘 앤 불린은 왕의 구애를 완강히 뿌리치지만 헨리8세의 끈질긴 도전에
마침내 무너지고 맙니다. 대신 그녀는 조건을 겁니다.
자신을 잉글랜드 왕비(정실. 우리로 치면 중전)로 인정해 줄 것과
자신이 낳을 자식(아들, 딸 불문)을 후계자로 삼아달라는 것이었지요.
앤에게 뿅~ 가버린 왕은 앤의 조건을 수락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결혼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커다란
산이 있었습니다.
당시 잉글랜드는 가톨릭 국가 (그 시대 유럽 모든 나라가 가톨릭을
국교로 삼고 있었음)였는데 이혼을 금한 가톨릭 교리와 왕 마저
갈아치울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의 로마교황청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캐서린 또한 시동생이자 남편인 헨리8세의 바람기에 진절머리가 난
사람이라 고분고분 이혼에 응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톨릭 교리(교회법)에 의하여 이혼이 합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지요.
앤 불린 때문에 몸이 후끈 달아오른 국왕은 여러 번에 걸쳐 로마교황청에
이혼 간청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습니다. 캐서린과 이혼 해야
앤 불린과 결혼하여 달콤한 신혼 꿈을 꿀 텐데 교황청 반대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왕은 절망합니다.
그리고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듭니다. 드디어 헨리8세는 로마교황청과
절연하고 국교를 가톨릭에서 성공회(聖公會)로 바꾸고 맙니다.
그 후 캐서린과 이혼한 헨리8세는 소원대로 앤 불린과 결혼하여 뜨거운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왕비가 첫 딸을 낳은 뒤 아들 사산하고
결혼생활도 원만치 않으며 무엇보다 변덕스런 헨리8세 마음이 이미
다른 여자에게 가 있어 결혼 3년만에 두 사람은 파국을 맞고 맙니다.
인정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왕은 크롬웰을 시켜 왕비에게 간통죄를
뒤집어 씌운 다음 런던탑에서 사형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참고로 헨리8세는 6명의 아내를 두었는데 그 중 2명이 참수 당하는 비극
맞았고 토머스 크롬웰과 <유토피아> 저자이며 저명한 작가인 토머스
모어 등 수 많은 사람을 런던탑에서 처형했습니다)
1536년 5월 19일, 그날은 늘 잿빛으로 흐려 있던 런던 하늘이 맑고
청명하여 '앤 블루'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고 하네요. 간통 혐의를
인정하면 목숨만이라도 보전해 주겠다는 왕의 제안에도 자신의 결백과
딸의 왕위 계승을 위하여 구차한 삶 거절하고 끝내 죽음 선택하여
스물아홉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당찬 여인. 앤 불린은 푸른 하늘과
향기로운 라일락꽃 보며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아, 오월이군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 집니다.
프랑스 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나 황급히 도망치다 혁명군에 붙잡혀
단두대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와네트는 단두대가 설치된 제단에
오르며 사형집행인 발을 살짝 밟는데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라며 마음의 평정 유지하려
애 썼다 합니다.
그렇게 앤 불린은 세상 떴지만 그의 딸 엘리자베스1세가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올라 '해 지지 않은' 영국 건설하며 승승장구 밖으로 뻗어나가
도처에 식민지 개척하고 세계초강대국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스물아홉
밖에 되지 않은 앤 불린이 간통이라는 억울한 누명 쓰고 죽어가며 지키고자
했던 것은 영원한 진실과 자식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야망이었습니다.
오늘로 〈엽편서생〉 문 연지 꼭 천 일 되는 날이군요.
우리 '엽편이'와 '서생이'가 앤 불린이나 마리 앙투와네트처럼
유명하진 않아도 글방 연지 1000일째 되는 날이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앙드레 모루와 선생의 역사이야기 빗대어 지나온 글방 1000일을
되새겨 봅니다. 글방 주인 되는 서생이 게으르고 학문 깊지 못해
쓸 만한 글귀 찾을 수 없어 아쉬우나,
1000일 동안 쌓아 올린 공력 생각하여 너그럽게 용서하시고 지나가는
길에 글 부스러기 흩날리거든 내치지 말고 건사해 주시옵기 바라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