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강
가을입니다.
여름 물러간 자리에 가을 들어와 서늘한 우수로 나그네 맞이하네요.
어디로 떠나야 할텐데...
춘천 어떠세요?
춘천은 봄내골이란 뜻이죠. 아주 오랜 옛날엔 삭주라 했다는군요.
봄내골로 떠나는 가을 여행에 그댈 길 동무 삼고 싶습니다.
저 안전한 사람이니까 따라 오셔도 된답니다. ㅎ
춘천은 둘러 볼 때가 많지만 오늘은 소양강으로 갑니다.
시내에서 택시나 버스 타고 호수로 달려 볼까요.
소양강에서 청평사 가는 배 타세요. 작은 배가 호수 지나 청평사로 가는데
단풍철엔 울긋불긋 경치가 참 좋습니다. 멀리 강원도 양구 가는 선편도 있어
강원도 깊은 내륙을 배로 여행하는 묘미도 즐길 수 있죠.
소양강에서 청평사까지 약15분 걸리는데 배에서 내리면 마치 섬에 들어 온 것처럼
아늑합니다. 청평사 구경하고 산길 따라 오르면 괜찮은 폭포가 나옵니다.
산행 즐기고 싶으면 여기서 능선 따라 오르세요. 오봉산이 시작되는 지점이거든요.
젊은 시절 친구와 둘이서 오봉산 간 적이 있는데요.
우린 단풍 곱게 물든 산에서 가을 정취 흠뻑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내렸어요.
처음엔 부슬부슬 내리더니 급기야 소낙비가 퍼 부었습니다.
약 5시간 정도...
내 생애 그 처럼 지독하게 비 맞아본 것 처음이었어요.
얼마나 맞았는지 나중엔 피부속으로 빗물 스며들지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봉산 다섯 봉우리 넘어 배후령 고개로 하산했죠.
온 몸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덜덜덜~~~
계속 떨었어요.
종종 지나가는 차 있어 세워달라 손짓 했지만 창문 열어보고 남자들이니까
홱홱 지나갑니다. 매몰차기 이를데 없군요. 에이 갓뎀!!
여행 하다 보면 성 차별 느낄 때가 많은데요.
여자들은 용서 되는데 남자들은 가차 없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버스가 왔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물에 빠진 생쥐꼴이군요.
나이 든 아주머니가 마른 수건 건네줍니다. 수건으로 얼굴 닦으니 좀 낫네요.
속옷까지 젖어 춥고 영 불편합니다. 배후령고개에서 춘천역으로 왔습니다.
관광철이라 서울 가는 기차표가 없다네요.
노란 은행잎 길게 흩뿌려진 신작로 걸어 버스터미널로 갔습니다.
다행히 표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줄이 길군요. 허기 달래려
부근에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 춘천막국수 시켰습니다.
오랫동안 비 맞고 추위에 떨어 따뜻한 음식 먹어야 하는데 춘천에 왔으니
이 지방 음식 맛보자고 살얼음 떠 있는 막국수 시킨 것이 실수였어요.
내장 오그라 들도록 떨었습니다.
덜덜덜~~~
터미널 매표소 앞에서 차례 기다리는데 순찰차에서 경관이 내리더니 신분증 요구합니다.
없다 하니까 주머니에서 수배자 명단 꺼내 우리 얼굴과 대조합니다.
그리고 경찰서로 가자 합니다.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신고가 들어 왔다네요.
저는 살인범, 강도범처럼 무섭게 생기지 않았는데 왠일일까요.
알고보니 생김새가 대학생 수배자와 비슷 하다는군요.
경찰서에서 수배자 대조와 간단한 조사받고 풀려났습니다.
나이든 경찰관이 저에게 한 마디 하네요.
"젊은이, 체 게바라 닮았어!"
"그 분 아세요?"
"그럼. 내가 젊었을 때 본부 보안국 근무했거든..."
서울가는 버스 탔습니다.
차 안이 따뜻하군요.
스르르~~~ 몸이 녹으며 달콤한 잠에 빠져듭니다.
터미널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흔들어 깹니다. 집에가라고...
상봉동 터미널 빠져나와 지하철 타고 집으로 향합니다.
가을...
소양강에서 추억 남기세요.
오랫동안 잊지 못 할 것입니다.
저 처럼 비 맞지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