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얼굴, 얼굴들...

달빛 아래 파도 2014. 5. 24. 18:10






 

따사로운,
아니 뜨거운 5월 햇살 눈부십니다.
저는 오늘도 강변 서성이다 집에 돌아갑니다.
봄 꽃 만발한 둑 길 지나 신작로 접어들자
학생들이 떼 지어 걷고 있습니다.
한 무리가 3~40명쯤 돼 보이는데 서너 무리가 날 향해 밀려듭니다.

아!
그들에게서 진한 향기가 납니다.
봄 향기
젊은 향기
아름다운 청춘 향기...
드디어 내가 그들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녀석들 모습이 각양각색입니다.

실한 놈
약한 놈
키 큰 놈
작은 놈
찡그린 놈
환한 놈
눈이 호수 같은 놈
작고 째진 놈
얼굴 하얗고 곱상한 놈
까무잡잡하고 주근깨 있는 놈

이마에 송글송글 땀 맺혀 있는 놈

옅은 화장으로 한껏 멋 부린 놈
뚱뚱한 놈
갸름한 놈
머리 흑발인 놈
염색하여 노릇한 놈
안경 쓴 놈
안 쓴 놈

오밀조밀 복스럽게 생긴 놈

거칠고 짓궂어 보인 놈

귓불 늘어진 놈

올라 붙어 작은 놈

입술 도톰한 놈

얇아 창백한 놈
가슴 볼록한 놈
아직 덜 자라 표 나지 않은 놈
옷 매무새 야무진 놈
수수하게 차려 입은 놈
거뭇거뭇 수염 돋아난 놈
바짓단 뜯어진 놈
치열 고른 놈
누런 뻐드렁니 드러낸 놈

깔깔거리며 연신 조잘대는 놈

입에 뭘 넣고 오물거린 놈

친구 바라보며 한 입 먹고 싶어 안달난 놈 
콧날 오똑한 놈
납작한 놈
이빨 앙다물어 단호한 척 한 놈
질겅질겅 껌 씹으며 무심한 척 한 놈...

그렇게 5월 아이들과 마주치고
이내 사라집니다.
중학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닌
고등학생...
세월호 타고 아름다운 섬으로 수학여행 가다
인생 전체를 잃어버린
우리 단원고 학생들과 동년배 아이들입니다.

울컥,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옵니다.
어른들이 조금만 잘했다면
선장과 선원, 공무원들이 반칙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그들도 지금 이 아이들처럼
햇살 고운 5월 광장을 웃고 떠들며 걷고 있을텐데...
너무 아쉽고 자책으로 가슴이 무너집니다.

저는 아들만 둘인데 애들 나이가 서른, 서른 둘이고
한 아이는 이미 결혼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열여덟된 셋째 딸이 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사랑하는 딸아이가 바닷속 캄캄한 선실에 갇혀 있다는 고통속에서
애타는 아버지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혈통으로 내 아이는 아니지만
심정적으로 내 아이보다 더 가깝고 귀한
그 소녀 그리며 눈물 흘립니다.

밝고 찬란한 5월 햇살 아래
어른인 것이 너무 죄스러워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절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담아
바다 아이들을 불러봅니다.

애들아!
그만 돌아오렴.
엄마가 몹시 기다린다.

콜린 로벳이 부릅니다.

'돌아오지 않는 소년병'

 

세월호에 탔다 희생된 모든 영령 앞에
진실한 마음으로 고개 숙이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