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달빛 아래 파도 2014. 3. 30. 19:29

 

톨스토이 작품 가운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런 글이 있습니다.

제가 어려서(아마 초등학생 무렵) 본 것 같은데 지금도 어렴풋이 떠 오릅니다.

톨스토이는 사람이 사는 목적을 사랑이라 했습니다.

물론 사람 사이의 사랑이 아니라 신에 대한 사랑 말입니다.

대문호는 말년에 작가라기 보다 사상가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는 인간의 영혼에 대하여 얘기하며 선하게 살고 신께 의지하는 삶을 간구했지요.

 

저는 무엇으로 살까요?

회사 나가고

강변에서 운동하고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아내와 다투고 

더러 웃고

가끔 짜증내고

1년 남은 퇴직 생각하고

부실한 몸 걱정하고...

 

그럴까요?

정녕 그게 내 인생의 전부일까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국문과 또는 신문방송과, 문예창작과 나와

글 쓰거나 교사 되고 싶었는데 제가 공부 흥미 잃고 옆길로 새는 바람에 멀어져 버리고...

그 다음 기자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앞 조건처럼 다른 마음 먹는 통에 물거품 되고 말았지요.

 

지금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여행 작가...

세계 여기저기 돌아 다니며 그곳 사람들 일상 경험하고 영혼이 스민 진솔한 글 쓰고 싶습니다.

제가 여행 좋아하고 부족하나마 글 조금 쓰니까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커다란 제약 때문에 어렵겠군요. 참 아쉽습니다.

그것은 신방과 문창과 나오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저는 가끔 제가 처한 현실을 '시지프스의 바위'에 비유하곤 합니다.

너무 거창한가요?

 

신에게 거짓말한 죄로 벌 받은 시지프스는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에 끌어 올리는데

올려 놓지마자 바위가 굴러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면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 자기 보다 몇 배 큰 바위 밀고 산 위로 올라가지요.

죽을 힘을 다해 바위 밀고 비탈 올라봐야 무슨 소용입니까.

정상에 다다르면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가엾은 시지프스는 그 영원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제가 '감내하기 힘든 제약' 때문에 여행 작가 되는 것 포기하고

섬마을에 돌아가 여생 보내는 것도 포기하고

그냥 강변길 얼쩡거리며 살고 만다는 생각하면 꼭 시지프스 바위가 제 가슴팍에 떨어진 느낌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까요?

사랑

권력

명예

성북동 호화 저택

마이바흐 자동차...

 

사람이 무엇으로 사느냐면 건강으로 산다고 믿습니다.

건강하면 꿈 꾸는 모든 것 이룰 수 있으니까요.

 

 

 

 

올리비아 뉴튼 존이 부릅니다.

빗속에서 우는 푸른 눈동자(Blue Eyes Crying in the Rain)

 

사랑하는 그대 빗속에서 울지 마세요. 너무 아프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