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추강에 밤이 드니...

달빛 아래 파도 2013. 11. 18. 12:23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배 저어 오노라

 

월산대군(1454 ~1488)이 지은 '한정가'입니다.
왕이 될 뻔한 사내가 왕이 되지 못하고 초야에 묻혀

지낸 쓸쓸한 비애가 묻어 나는 듯 합니다.

 

이 시조는 물욕과 명리名利를 벗어나 자연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선비 모습을 그린 작품인데,

가을 달밤에 배 띄어 낚시질로 풍류 즐기는 한적한

생활의  풍취를 읊은 강호한정가江湖閑情歌로서

여유로움속의 멋을 아는 옛 선비 면모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가을 달밤 풍치속에 낚싯대 드리우는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시조로, 특히 종장의 무심한 달빛

싣고 빈배 저어 오는 모습이 탈속의 정서를 짙게

드러내고 있다 할 것입니다.

 

월산대군 이정李婷은 조선시대 덕종의 아들이자 성종의
형으로 당연히 왕이 되어야 했지만 인수대비와 한명회의
밀약(?)으로 동생인 성종에게 왕위를 내 주고 낚시나

다니며 켜켜히 쌓인 한을 풀었던 것이지요.

 

가슴속 응어리로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 그 사내는 끝내

서른네살로 요절하고 마는데 그깟 왕, 못하면 그만이지

젊디 젊은 나이에 죽을 것까지 있을까요.

 

안타깝고 한편으론 바보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명예와 이익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목숨까지 버려야 하는지...

좀 더 너그럽고 여유있게, 가진자는 교만하지 않고 없는자도
비굴하지 않게 사는 방법 찾는다면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할 수 있을텐데요.

 

 

#춥고 바람 불고...

계절이 겨울로 치닫고 있습니다.

 

내가 11월을 좋아하는 까닭은

청명하고, 스산하고, 거리엔 낙엽이 뒹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11월을 사랑하는 이유는

아름답던 지난 날을 떠올리기 가장 적합한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나에게서 추억을 앗아 간다면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형벌이

될 것입니다. 지금 나를 지탱하는 몇가지 요인이 있지만 추억, 그 하나가

삶의 버팀목 되어 인간성 허물지 않고 이 땅에 살게 합니다.

 

내 육신은 뼈와 살로 이루어져 있지만

내 정신은 바람과 파도와 갈매기와 붉은 석양, 그리고 별빛이 지켜줍니다.

그래서 오늘 힘들어도,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고통스런 절망이 휘몰아쳐도

내일 아침 다시 일어날 용기 얻는 것입니다.

 

오늘 밤에도 어김없이 강변에 나가 늙은 억새 몰아치는

세찬 바람과 맞닥뜨리지만 난 행복할 것입니다.

바람이 날 떠나지 않는다는 그 한가지 약속 잊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