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드십니까?
농사 가운데 가장 큰 농사가 자식 농사라지요.
오래 전 어느 신문에서 본 내용인데요. 웃자고 한 말치고는 우리 현실과 많이 닮았더라고요.
원문은 짧은데 제가 살을 좀 붙였습니다. ^^
서울 사는 새내기 엄마가 아이 낳아 애지중지 키우며 장차 큰 사람 만들 원대한 꿈을
갖고 삽니다. 꼬마 녀석이 잘 생기기도 했지만 총명하고 행동이 야무져 엄마를 흡족하게 합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엄마는 아인슈타인우유 먹이며 앞으로 천재가 되라 기원하지요.
그런데 아무리 가르쳐도 천재는 아닌 것 같더래요. 그래서 목표 수정하여 우유 바꿉니다.
서울우유로… 그래 서울우유 먹이면 틀림없이 서울대 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아이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상위권만 맴돌자 엄마는 다시 계획을 바꿉니다.
이번에는 연세우유, 비록 서울대는 못 가지만 연대만 가도 어딘가. 제발 연세대라도 붙어다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갑니다. 중2까지 열심히 하던 아이가 3학년이 되자 상위권에서 약간 밀려납니다.
개인교습 시키고 난리법석 피우지만 역시 이번에도 목표 달성이 어려워 보입니다. 엄마는 눈물 머금고
또 다시 우유 바꾸고 맙니다. 건국우유… 언감생심 서울대, 연세대는 잊은 지 오랩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만 들어가도 성공이지 뭘… 괜한 욕심 부리지 말자. 엄마는 입술을 깨뭅니다. 아이는 엄마가 자신
때문에 숱한 고생하고 학원비, 개인교습비로 큰 돈 들어간 것 알고 마음이 아픕니다.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밤낮으로 공부에 매진합니다.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 오로지 책과 시름합니다.
불가에서는 이런 것을 용맹정진이라 하지요.
약간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하안거, 동안거… 또는 면벽수행이라고도 하고요. 그러나 세상 일이 어디
뜻대로 됩니까. 긴 시간 두 모자가 그렇게 애 썼는데도 고등학교 성적이 신통치 않습니다. 끝내
아이는 수능 점수가 낮아 하향 지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안정권이라 믿은 건국대학교 철학과에
지원했으나 불합격. 낙방의 고배를 마십니다.
두 모자를 비롯하여 온 가족이 울고불고 난리 났습니다. 정말 슬픈 광경 아닐 수 없습니다.
주위가 온통 숙연해 지는군요. 한참 동안 대성통곡 하고난 엄마가 가족들 앞에서 중대발표를 합니다.
"내일부터 건국우유 끊고 매일우유로 바꾼다!"
아직까지 충격이 가시지 않은 아들이 그렁한 눈망울로
엄마를 쳐다봅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된 엄마가 아이 힘껏 끌어안으며 울음 터뜨립니다.
"인석아, 매일 매일 우유 먹고 건강하기라도 해야지. 공부가 다 뭐겠니. 튼튼하게 자라는 게 최고란다!"
지난 여름, 태안에 있는 사설 해병대 훈련장에서 극기 훈련하던 공주사대부고 학생 다섯 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채 피지도 못한 어린 꽃들의 죽음 앞에 절로 고개 숙여집니다.
인솔교사와 훈련교관 등 어른들이 꼼꼼히 챙기지 못해 이런 결과가 난 것이지요. 나는 먼저 떨어진
꽃들에게 한없는 죄책감 느낍니다. 어른들은 세상을 안전하게 만들 의무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자식들이, 이 나라의 미래 세대들이 밝고 안전하게 꿈을
펼칠 수 있는 여러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되고 희생당하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저 또한 아무 책임 없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엄마가 오열합니다.
그리고 곁을 지키고 있는 아이 친구들에게 절규합니다.
"공부가 다 뭐겠니. 살아 있는 것이 가장 큰 효도란다!"
추석 무렵, 진도에서 배로 40분 거리에 있는 '혈도'라는 섬이 텔레비전에 소개되었습니다.
주민 10여명이 사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어촌마을입니다. 제가 꿈꾸는 율도국, 마음의 유토피아가
거기 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갯밭 일구어 미역과 다시마, 톳, 김 등 해초 뜯고 바다에서 주낙과 낚시로 물고기
잡습니다. 장어, 우럭, 넙치, 서대, 부시리, 농어… 이웃사촌들이 친척인지라 함께 일하고 같이
밥 먹으며 가족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년 아주머니 얼굴에 그늘 드리워져 있습니다.
기자가 연유 묻자 사내가 말합니다. 서른 살 먹은 둘째 아들이 10년 넘게 연락두절이라고…
아! 그곳 평화로운 어촌에도, 율도국에도 어김없이 아픔은 찾아 드는군요. 남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마 목이 멥니다.
"부모한테 맺힌 것 있어 고향에 안 와도 좋으니 제발 전화 한 통 해주면 소원이 없겠다!"
아~ 엄마의 소원은 전화 한 통입니다. 우리 눈에는 사소해 보이지만 바닷가 엄마는 전화 한 통이
그리 절실한 것이지요.
애들 어려서 아인슈타인우유, 서울우유, 연세우유, 건국우유 먹여 보셨는지요.
그래서 원하는 것 이뤘는지요. 성공했다면 축하드리고요.
만약 성공하지 못했다면 먹던 것 당장 끊고 매일우유 꼬박꼬박 먹이십시오. 건강이 최고 아닙니까.
저는 공주 엄마와 혈도 엄마 보며 큰 깨달음 얻었습니다. 저 역시 살아 있는 것이 가장 큰 효도라
생각하며 서울대, 연세대 못 간 우리 집 '선생들' 아프게 한 것 후회하며 애들에게 용서 구합니다.
"그래. 술 마셔도 좋으니 무사히 귀가만 해 다오."
아! 가을 시작되는데 날이 막 춥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