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복지에 대하여

달빛 아래 파도 2014. 11. 6. 09:31

 

 

 

다산 정약용은 지금 잣대로 판단 한다면 '진보주의자'로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저서를 남긴 학자인데요. 그의 경세론이 망라된

1표2서(一表二書·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중에서도 첫째로

꼽히는 것이 <목민심서>라 할 것입니다. <목민심서> 애민(愛民)

진궁(賑窮)조에서 다산은 오늘 날 국민기초생활보장과 비슷한 제도를

주창했습니다.

 

그는 "홀아비와 과부, 고아, 그리고 늙어 자식 없는 사람을 사궁(四窮)이라

하는데, 이들은 궁핍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립할 수 없고, 남의 도움을 받아야

일어설 수 있다. (중략) 합독(合獨)을 주선하는 정책 또한 실행할 만 한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그는 구체적인 대책으로 "늙은 홀아비로

자식 없는 사람에게는 매달 곡식 다섯 말씩을, 늙은 과부로서 자식 없는

사람에게는 매달 곡식 세말씩을 지급해 주며, 요역을 모두 면제해 주고,

동리의 덕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이 살 곳을 마련해주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지요. 이를 강제규정으로 삼아 어기는 지방관은 장 60대다스려야

한다고 까지 했습니다. 다산은 또 "모든 고을에 중매를 맡은 사람이 있어서

홀아비와 과부를 골라 화합시키니 이를 '합독(合獨)'이라 한다"는 <관자>

말을 인용, 혼자된 남녀가 함께 지내면서 서로 의지할 수 있게 하자고 주장

했습니다. 

 

다산은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아직 시민자유가 확립되기 전에 '복지'에 대하여

언급할 정도로 깨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조선 영조· 정조시대는 우리가 스위스

보다 더 잘 살 때 인데요. 당시 스위스는 너무 가난하여 남자들이 다른 나라

용병에 팔려나가 가족 생계를 책임졌으며, 백성들은 알프스 험한 바위 꼭대기에

매달려 수정 채취하며 근근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봤을 때 조선이 가난

때문에 복지를 못한게 아니라 양반 사대부 등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부를

독점하는 현상으로 인하여 백성들 살림살이가 도탄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1800년대, 그러니까 지금으로 부터 200년 전에 복지를 국가정책으로 채택한

나라는 없었습니다. 거의 모든 나라가 먹고 살기 힘든 시기였으니까요. 다만

여기서 말하고자 한 것은 봉건왕조 시대에도 국가재정이 초보적 수준의 복지를

시행할 여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근대적 의미로서 복지를 최초로 시행한 나라는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입니다. 그런데 스웨덴 역시 초기에 엄청난 저항과 시행착오를 견뎌야

했습니다. 이른바 '파이' 논쟁이 그것인데요. 빵의 크기를 키워야 나눠 먹을

것이 있지, 작은 빵을 갖고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핏

그럴듯한 얘긴데 거기에도 모순이 있죠. 세계 여러나라에서 복지를 시행할 때

나라 살림이 넉넉해서 한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독일 같은 경우도 제2차세계 

대전 패전국으로서 뼈아픈 고통 가운데 복지의 기본틀을 짰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복지'는 지금 논쟁 중인데요. 정부와 국민, 노동자와 고용주,

부자와 서민, 진보와 보수 등 각각 입장에 따라 의견이 다르더군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복지다운 복지를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일제식민통치와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복지를 시행할 여력이 없었던 것 또한

사실이나, 국가에서 복지를 책임있는 정책으로 다루지 않아 경제력에 비하여

초라한 복지 수준을 맴돌고 있었지요.

 

200년이 지나 다시 다산을 생각합니다. 그가 껴안으려 했던 홀아비와 과부,

늙어 자식없는 노인은 지금의 서민들입니다. 우리는 200년 동안 경제력이

수만배 늘었을 텐데 아직 그문제를 명쾌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장도 좋지만 가난한 백성 눈물 닦아주는 따뜻한 정치가 필요한 때 아니겠습니까.

 

한국인으로서 노벨경제학상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는 

신자유주의와 승자독식을 정면에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과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책을 보면 

강대국들의 약소국에 대한 경제 침탈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못 입고 못 먹으며 허리띠 졸라 매고 고생한 세대가 저희들 아니겠습니까. 이제

국가에서 복지에 대하여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빚내서 할 

일은 아니지만 사정이 허락한다면 아이들 굶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무상급식 중단 등 복지 축소 움직임에 대하여

걱정하는 마음으로 몇 자 적었습니다)  

 

*이 글은  경향신문 이중근 논설위원의 기고문을 인용, 참조하였습니다.